용흥궁 주변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04 00:47:12
용흥궁 주변
사도세자가 죽고 그의 아들 정조가 셋째 아들이 되자 사도세자를 처형한 측은 그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새로운 왕자를 임명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정조의 이복동생 은전군이 미리 발각되어 자살하고, 은언군과 은신군은 제주도로 유배된다.. 그곳에서 은신군은 병에 걸리고, 은언군은 다시 강화도로 이송된다..
은응군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고, 장남 상계군은 1779년그 역시 반역죄와 자살죄로 강화도에 유배되었고, 은언군의 처와 며느리를 1801년1948년 천주교 박해 때 신앙인으로 성장하여 결국 은언군도 공부하였다.. 더욱이 계속되는 반란의 세력은 왕가를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1844년은언군의 손자 이광과 그의 아들 원경은 1942년 민진용의 난으로 전사한다..
민진용이 이 배신을 계획했기 때문에 ‘Jade by 민진용‘이곳에는 경응과 원범만이 살아남는다고 한다.. 고아들은 강화에게 쫓겨나 벌목꾼이 된다.. 그리고 51년이 지난 다음 날, 원범에게 왕가를 계승하라는 칙령이 내려졌다.. 그는 조선 25철종대왕은 드라마 등으로 유명하다. ‘강화도령‘오전.
죽임을 당하고 대대로 숨어 살던 강화도의 미혼 벌목꾼이 그를 서울에서 데리러 왔지만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를 수밖에 없다.. 나는 깜짝 놀라 아니라고 했고, 그래서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외치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컸고, 서울로 가는 길이 천데고개였다는 전설이 있다.. 현재 서울의 경계 고촌면 48국가 번영의 길을 걷고 있다.
그동안 1853년1946년 강화 유수는 원범이 살던 초가집을 개축하고 용흥궁이라는 팻말을 걸었다.. 궁궐이라고 하면 궁궐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반 주택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경내에는 철종의 거처라는 표시가 있다. ‘철종 조잼‘묘비와 비문이 있습니다.. 지금은 강화읍 관청리 골목길 일명 내수톨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토지공사는 강화소형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이달 말 용흥궁 일대에 공원 조성을 시작할 계획이다.. 고려궁터, 성공회성당, 강화성당, 김상용비 등이 있다..